날마다 글쓰는 습관이 중요한 이유
청소년 대상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글쓰기 습관 만들기를 가장 강조한다. 글쓰기 습관만 만들 수 있다면 글쓰기 공부의 절반 이상은 끝난다. 글쓰기 습관 형성을 돕기 위해 날마다 글쓰기 피드백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날마다 쓰지 않는 학생들은 대부분 중도에 수업을 포기한다. 학부모들에게도 과제를 하지 않을 거면 이 수업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못 박아둔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날마다 운동을 하듯, 정신의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읽고 써야 한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글쓰기 훈련의 중요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훈련은 공연에 앞서 무용수가 몸을 풀고, 시합 전 육상 선수가 스트레칭을 하는 것과 똑같다. 육상 선수라면 "난 어제 뛰었어. 그러니 오늘은 워밍업을 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달리기를 위해 매일같이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한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쓰면 쓸수록 실력이 향상된다.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글쓰기 수업은 특히, 수동적으로 수업을 구경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글쓰기 역량은 악기 연주나 운동처럼 훈련을 통해 글쓰기 기술을 자기것으로 만들 때만 향상할 수 있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날마다 무엇인가 쓰고, 적절한 피드백을 받아 다시 쓰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글쓰기 강사는 티칭(teaching)보다는 코칭(coaching)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수학이나 영어 숙제는 날마다 하면서 글쓰기는 날마다 하지 않는다. 모국어는 늘 쓰는 언어이니까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자연히 잘하게 될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모국어 사용 능력이야말로 모든 지적 성취의 기초다. 글쓰기 습관은 배움과 경험을 능숙하게 자기화하여 학교 공부뿐만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그러면 초등학교 5학년이라도 <레 미제라블>을 읽고 아래와 같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법을 조금 어겼다고 너무 가혹한 벌을 내리거나 아주 나쁘게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가혹한 형벌 대신 범죄자를 개과천선 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신부는 장 발장이 순간적인 돈 욕심으로 물건을 훔쳤을 때 그가 앞으로 정직하게 살기를 바라며 은촛대를 그에게 주었다. 그 후 장 발장은 미리엘 신부의 용서에 감동받아 그 동안의 범죄를 반성하고 정직하게 살게 된다. 이처럼 용서를 위해서는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알고 뉘우치도록 돕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인간의 선함을 믿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와 달리, 자베르 형사는 작은 범죄도 절대 용서할 수 없으며 범죄자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했다. 훗날 그는 장 발장이 착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자신이 장 발장을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 힘들어 한다. 그리고 고뇌와 후회 속에 센 강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반면에 미리엘 신부는 범죄자도 앞으로의 인생은 착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장 발장은 착한 사람일까? 그는 법을 어기고 도둑질을 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악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도둑질을 했다. 이런 점에서는 선한 사람이다.
이처럼 인간은 선과 악이 섞여있는 것 같다. 인간은 양심과 동정이 있으므로 선하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이고 질투심이 있으므로 악한 점도 있다. 인간이 죄를 저지르는 이유도 인간은 선악이 공존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면서 죄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때로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과자였던 장발장이 개과천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리엘 신부가 장 발장이 자신의 물건을 훔쳐도 용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미리엘 신부를 잊지 않으며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은 것 같다.
그런데 범죄자를 용서만 해주면 되는 것일까? 만약 피해자가 용서를 해도 가해자가 반성을 하지 않으면 용서를 해도 다시 범죄를 져지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 발장과 다르게 용서를 받아도 자기 스스로는 반성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익과 손해를 따져서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용서만으로 죄를 뉘우치게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때로는 공정한 법 집행도 필요하다.
공정한 법 집행이란 첫째, 재산 등에 관계 없이 저지른 죄에 맞게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둘째, 재판은 권력을 가진 쪽에만 유리하게 이루어지면 안된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장 발장에게 내려진 판결은 불공정했다. 장 발장은 저지른 죄보다 훨씬 더 중한 벌을 받았다. 그 결과 장 발장은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의 시간을 감옥에서 낭비하고 전과자로 낙인찍힌다. 이렇게 불공정한 판결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죄를 반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런 불공정한 처벌은 범죄자가 반성하려는 의지보다 억울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최근 버스기사 한 명이 단돈 800원을 횡령하여 회사에서 쫓겨났다. 이 판결은 피고인의 죄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렸으므로 불공정하다. 만약 내가 판사였다면 회사 측에 별로 손해가 없기 때문에 회사 측에 사과하거나 벌금을 조금 내라고 했을 것 같다.
공정한 판결을 위해서는 법 집행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노력해야 한다. 첫째, 경찰과 검사가 노력해야한다. 경찰은 범죄의 원인을 정확하게 수사하여 분석하고, 검사는 죄에 맞는 벌을 내릴 수 있게 해야한다. 둘째, 변호사가 노력해야 한다. 변호사는 피고인이 억울한 판결을 당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변론해야한다. 셋째, 판사가 노력해야한다. 판사는 법대로, 피고의 죄에 맞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또한 시민들도 법정이 공정한 재판을 하는지 잘 지켜봐야 한다.
‘레 미제라블’은 전과자 장 발장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비록 그가 범죄자였지만 개과천선하여 인간적으로 살아온 것처럼 우리도 범죄자에게 속죄할 기회를 한 번이라도 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새 인생을 얻고 행복하게 남을 위해 살게될 것이다. 그러면 사회 전체가 행복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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