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보다 문법
인간 사회의 최고 규범은 헌법이다.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헌법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헌법은 수식(數式)이 아니라 문장으로 되어 있다. 헌법은 문법에 기초해야만 작성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다. 헌법이 없어도 문법은 존재하지만, 문법이 없다면 헌법도 없다. 그러므로 문법이 헌법보다 근본적이다.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은 문장을 이해할 수 없고, 당연히 헌법을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다음과 같은 매우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반드시 헌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적어도 한 학기 이상, 공화국의 청소년들은 수도사들이 성서를 읽듯, 헌법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 추상적인 문장 덩어리가 실제 자신들의 삶에 어떻게 투사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독교인들이 주기도문을 외우듯, 공화국의 청소년들은 헌법 전문을 늘 암송하며, 자신이 속한 공화국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되새겨야 한다.
긴 터널과 같은 문장을 쪼개고, 쪼개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헌법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이라는 의미체를 지탱하고 있는 문법의 질서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리 청소년들이 헌법 전문을 읽고, 이해하고 논평할 수 있다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들은 한국어 문장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방법도, 헌법도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 문법에 따라 자신이 쓰는 말과 글을 가다듬어 본 경험이 없고, 우리의 정부가 헌법 가치를 수호하고 있는지 따져 묻지도 않는다. 그 대신 잡다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문제를 푸는 훈련만 반복하고 있다. 의심하고 비판하기보다는 다섯 개의 선택지 안에 존재하는 답을 찾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음모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공화국의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고분고분한 시민을 만들기 위한 우민화정책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발표된 2028년 대입 개편안은 이런 의심을 더욱 짙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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