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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5.10 10:10
  • 노래하는 마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었다. 그 이유는 신해철 때문이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지만 나는 신해철이 더 좋았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가 쓴 가사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가 서강대 철학과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해서 대학가요제가 나가 우승한 후, 화려한 뮤지션의 삶을 산다는 환상특급 수준의 망상에 빠졌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저런 삶을 살면 좋겠다는 막연한 이상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모르긴 해도, 내 또래 남자아이들 중에서 그런 아이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내가 왜 음악 하는 삶을 꿈꾸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무도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었지만 나는 막연히 그것을 원했다. 해야 하는 것을 잘하는 것에 만족하는 삶이 싫었던 걸까?

 

TV와 음악 잡지에서 신해철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미디(MIDI)라는 걸로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집에 있던 PC에 해적판으로 구한 미디 프로그램을 깔고 드럼과 베이스를 찍으며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내 기억으론 그때가 학창 시절 내가 부모님께 무엇인가를 부탁했던 거의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타는 대학교 간 후에 배워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러면 그런 거겠지 하면서 더 부탁하지 않았다. 그때 기타를 배웠다면 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아쉬움 때문인지, 중학생이 된 첫째가 베이스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것도 닮나?”라는 생각에 신기했고, 아무 말 없이 베이스 기타와 앰프를 사주었다.

 

나는 대학 입학 후에 사촌형의 권유로 노래패에 들어갔다. 노래패라고 하니까 노래하는 곳인 줄 알았으나 그 노래가 민중가요라는 것은 몰랐다. 나는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나 할 팔자도 성격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용기도 신념도 없었다. 의식 있는 베짱이인 척하고 싶었던 나에게 노래패는 가장 맞는 도피처였다.

 

나는 ‘노래로 세상을 바꾼다’는 낭만적인 모토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실제로 상당히 많은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 이론적으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적 대중문화론에 경도되었다. 나는 돈키호테처럼 어리석고 무모하게도, 존재하지 않는 괴물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새로운 세계관을 장착한 나에게 대학가요제는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이 되었다. 나는 대학가요제를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나를 꾸짖었다. 나는 세상을 바꾼다는 새로운 해야 할 일을 찾아 하고 싶은 일을 억압했다.

 

아마 ‘내 마음 깊은 곳의 나’는 대학가요제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쓴 곡들을 다시 작업하기로 마음먹은 후,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쓴 곡이었다.

 

대학가요제에 나갈 일은 없으니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다가, 신해철 헌정곡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의 전주를 흉내 내서 앞에 붙였다. 코러스에서도 응원가 느낌이 나도록 했다. 만들고 보니 대학가요제 예선도 통과못할 수준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는 1997년 대학가요제 본선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스무 살의 내가 삼십 년 후의 나에게 외친다. “너를 믿어!” 이 곡은 내가 나를 위해 쓴 응원곡이라고 해두자.

 

마왕 신해철에게 이 곡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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