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8장_문체와 태도

by 쓰다

이 글은 『신이 내린 필력은 없지만, 잘 쓰고 싶습니다』의 8장을 보충합니다.


같은 내용이면 짧게 쓰세요

 

지금까지 저는 ‘설마 이 정도는 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했던 수업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문장을 써내는 수강생을 지겹게 봐 왔습니다. 수강생들은 마치 부정확한 문장으로 글쓰기 강사를 괴롭히는 방법을 연구라도 한 것처럼, 매번 다른 문장을 다른 방식으로 틀립니다. 덕분에 저는 어떤 문장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는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독자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저는 이 글을 읽는 거의 모든 독자들 역시 정확한 문장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난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제 도전을 받아들이세요. 연습장을 펴고, 아래 문장을 고쳐 써보세요(제한 시간은 5분입니다)

 

(ㄱ) 자동화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ㄴ) 철수는 다수결의 원칙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ㄷ)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인하여 죽음을 생각하기 꺼려한다.
(ㄹ) 고객 응대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ㅁ) 이 글의 관점은 다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소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한 문장씩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어왔던 글쓰기에 관한 조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문장에 접근해보려고 합니다. 문장 고치기 책들은 대체로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이렇게 쓰는 것보다는 저렇게 쓰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지도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편한 방식이지만, 배우는 사람에게는 가장 지겨운 방식입니다. 쓰라고 해서 썼더니, 매번 ‘그건 아니에요. 저번에도 말했는데...’라는 지적을 들으면, 글쓰기는 지옥이 됩니다. 글을 쓰면 행복해진다더니 순 거짓말입니다. 저는 독자들에게 잡다한 규칙을 들이대는 ‘문장 파시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목표는 하나의 문장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 생각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단 이번 시간에 여러분께 해드릴 조언은 ‘짧게 써보세요’ 뿐입니다. 지금부터 앞에서 여러분이 풀어보았던 문장을 살펴볼 텐데, 모두 제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들이 실제로 쓴 문장입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ㄱ) 자동화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문장 규칙을 따지는 사람은 ‘줄임으로써’라는 표현이 부자연스럽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ㄱ)과 같이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장이란 뜻이 통하면 됩니다. 저 문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ㄱ)도 충분히 좋은 문장입니다. 대신, 저는 문장을 좀 더 짧게 표현할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할 겁니다. 같은 내용이라면 짧게 표현하면 쓰는 사람은 번거롭지만 읽는 사람은 편합니다. 저는 아래처럼 바꿔 보았습니다.

 

(ㄱ) 자동화는 비용을 줄여 회사에 이익을 준다.

 

저는 세부 규칙 대신, 어떻게 하면 문장을 더 짧게 만들 수 있는지만 생각했습니다. ‘줄임으로써’ 대신 ‘줄여’라고 쓰면 세 글자를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져다줍니다’ 대신 ‘준다’라고 쓰면 네 글자가 줄어듭니다. 일반적인 글쓰기 책은 ‘ㅁ으로써(서)’와 같은 표현은 쓰면 안 된다고 설명하거나 보조 용언 사용을 자제하라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그런 잡다한 규칙을 따르다 보면 규칙의 수는 끝도 없이 늘어나서 글을 쓰기 전에 규칙에 깔려 질식합니다. 대신, ‘짧게 쓰세요’라는 조언은 글쓰기 규칙을 외워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자기가 쓴 문장을 더 꼼꼼히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어떻게 하면 더 짧게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양한 문장 표현을 생각하게 됩니다. 문장을 짧게 쓰려면 핵심 문장 성분인 주어, 목적어, 서술어만 사용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ㄴ) 철수는 다수결의 원칙의 단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아마도, 다른 글쓰기 책들은 ‘의’나 ‘—에 대해서’라는 표현을 가능하면 쓰지 말라는 식으로 설명할 겁니다. 두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 외워야 할 규칙이 벌써 세 개나 됩니다. ‘역시 글쓰기는 내 길이 아닌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니 규칙은 잊고, 위 문장을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중심으로 고쳐보세요. 저는 아래처럼 바꿔 보았습니다.

 

(ㄴ) 철수는 다수결 원칙의 단점을 비판한다.

 

‘다수결의 원칙’을 ‘다수결 원칙’이라고 해도 뜻이 통합니다. 대신 한 글자는 줄였습니다. 또한, ‘다수결의 원칙의’라고 쓸 때, ‘의’가 반복되어 읽거나 발음하기 힘든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단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단점을 비판한다’로 목적어가 분명히 드러나게 줄였습니다. ‘비판한다’는 단어를 쓰니 뭔가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짧게 줄여 쓴 문장이 더 좋은데 독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군요.

 


(ㄷ)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인하여 죽음을 피하려고 한다.

 

(ㄷ)은 앞선 두 문장보다 복잡해 보이지만, 주어, 목적어, 서술어에 집중해서 짧게 쓰는 방법만 생각하세요. 저는 아래처럼 고쳤습니다.

 

(ㄷ)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기피한다.

 

‘사람들’을 ‘인간’으로 바꿨습니다. 한자어를 쓰니까 교양이 막 넘쳐 흐르는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인하여’를 ‘죽음을 두려워하므로’로 바꾸었는데 ‘—에 기인하여’라는 표현을 꼭 쓰고 싶다면 그 이유를 세 가지 말하고 쓰세요. 저는 한 가지 이유 정도는 댈 수 있겠습니다. ‘—에 기인하여’라고 쓰면 멋져보입니다. 좋습니다. 모든 멋진 것들은 약간은 번거로운 점이 있습니다. 읽는 사람을 좀 귀찮게 하더라도 멋져보이고 싶으면 쓰세요. 그러나 읽는 사람이 좋아할지는 모르겠네요. ‘생각하기 꺼려한다’는 ‘생각하길 꺼린다’로 바꿨는데 이렇게도 줄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그냥 한 번 고쳐봤습니다. 어떤 분들은 ‘공포’라는 단어가 너무 좋아서 꼭 쓰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래처럼 써도 됩니다. 대신 여섯 글자가 늘어나네요.

 

(ㄷ) 인간은 죽음에 공포를 느끼므로 죽음을 기피한다.

(ㄹ) 고객 응대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반복적으로 사용하는’을 ‘반복 사용하는’으로 고쳐보면 어떨까요? 뜻은 같은데 세 글자나 줄일 수 있습니다. ‘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역시 ‘기능을 개선했습니다’라고 고치면 같은 내용을 더 짧게 쓸 수 있습니다.

 

(ㄹ)고객 응대시 반복 사용하는 기능을 개선했습니다.

 

이렇게 보니, ‘의’, ‘—적’이라는 표현을 빼면 짧게 쓸 수 있네요. 하지만, 외우지 마세요. 짧게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런 잉여 표현들은 쓰지 않게 됩니다. 한 번 안 쓰면, 억지로 쓰라고 해도 다시는 안 쓰려고 하는 게 인간입니다. 벌써 마지막 문장이네요.

 


(ㅁ) 이 글의 관점은 다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소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제라 좀 어렵군요. 일단 이 글은 두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 문장 연결하기는 차차 설명합니다. 연결된 문장을 만나면 일단 쪼개주세요. 쪼개서 줄이고, 이어 붙이면 됩니다. 첫 번째 부분은 ‘이 글의 관점은 다수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가 되겠네요. ‘이 글의 관점은’으로 시작하면, 서술어를 ‘—것이다’라고 써야해서 문장이 길어집니다. 문장을 줄이려면 ‘—것이다’를 쓰지 않는 문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글은 —라고 말한다’라는 형태로 바꿔야 합니다. 따라서, 첫 부분은 ‘이 글은 다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라고 고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분도 똑같이 고치면 ‘이 글은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가 됩니다.

 

(1) 이 글은 다수 의견도 틀릴 수 있다고 말한다.
(2) 이 글은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이어붙이면 아래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ㅁ) 이 글은 다수 의견도 틀릴 수 있고,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지 않나요? ‘(1)이고 (2)’라고 연결하는 것보다는 ‘(1)이니까 (2)’라고 연결하는 게 논리적으로 더 정확해 보입니다.

 

(ㅁ) 이 글은 다수 의견이 틀릴 수 있으므로,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ㅁ)과 같이 연결된 문장을 제대로 고치려면 문장을 짧게 쓴 후, 두 문장의 논리적 관계도 따져봐야 합니다. ‘논리적 관계’라는 말을 들으니 어질어질해집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제가 모든 걸 너무 쉽다고만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솔직히 말하지만, 아이스크림 먹듯 쉬운 건 아닙니다.


길더라도 정확하게 쓰세요

 

짧게 쓰라는 원칙을 따른다면, ‘문화적 현상’보다는 ‘문화 현상’이 낫습니다. ‘—적’을 빼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문화적 현상’이라는 표현 안에는 ‘문화 현상’으로는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의미의 차이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으면서 눈에 불을 켜고 ‘—적’이라는 표현을 찾아 빨간 줄을 긋고, ‘쯧쯧, 이런 표현을 쓰다니 기본이 안 되었군요’라고 비난하는 사람을 비꼬기 위해 일부러 규칙을 어기고, 가능한 모든 단어에 ‘—적’이라는 접미사를 사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 역시, 글쓰기 강사라는 직업 때문에 수강생들에게 자주 ‘이렇게 쓰는 게 좋다’, ‘이건 안 좋은 표현이다’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확신은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일수록 율법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저는 규칙을 절대화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재단하는 문장 파시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왜 꼭 짧게 써야 하나요?’라고 묻는 수강생을 만나면 두렵기도 하지만 기쁩니다. 주어진 규칙을 무조건 따르는 대신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귀찮더라도 따져 묻고 의심하는 사람만이 지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그런 사람만이 자기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짧게 써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일단, 종이와 잉크를 아낄 수 있고, 읽는 사람의 시간도 덜 빼앗습니다. 문장을 연결하기도, 고치기도 편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장의 정확함입니다. 짧게 써야 정확하게 쓸 가능성이 커집니다. 언제나 효율성보다 정확함이 우선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쓰려면 문장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짧지만 부정확한 문장보다는 길더라도 정확한 문장이 낫습니다.

 

(ㄱ) 순자는 인간 선의 인위성을 주장했다.
(ㄴ) 순자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선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ㄷ) 순자에 따르면, 인간은 일부러 노력해야 선해질 수 있다.

 

(ㄱ)은 수강생이 쓴 문장입니다. 세 문장 중 가장 짧지만 ‘인간 선의 인위성’이라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비교할 때, (ㄴ)은 몇 자 늘었지만, 무슨 뜻인지 더 분명해졌습니다. ‘인간이—선해질 수 있다’와 같이 주어와 서술어 관계가 드러나게 바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선해질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마도 선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어떤 노력을 한다는 뜻일 겁니다(ㄷ). 이처럼, (ㄱ)에서 (ㄷ)으로 갈수록 문장은 길어지지만, 문장의 의미는 더 정확해집니다.

 

그러나 (ㄷ)이 (ㄱ)보다 항상 낫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글의 정확함은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정확한 글을 썼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써도, 독자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정확한 글이 아닙니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독자는 완전한 타자, 외계인, 블랙홀입니다. 뭘 어떻게 이해할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저는 (ㄷ)이 (ㄱ)보다 정확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독자는 (ㄷ)이 쓸데없이 장황하다고 생각하거나, ‘인위성’이라는 개념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개념화가 부족한 글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독자의 눈높이에서 써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기 글을 읽을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려야 합니다. 저는 수강생에게 늘 말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여러분의 글을 열심히 읽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게 써주세요.”

 

저는 수강생들이 써내는 문장을 보면서, 문장의 정확함이 얼마나 성취하기 어려운 미덕인지 날마다 깨닫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앞으로 소개할 문장들을 보면 글쓰기 강사의 고충, 아니 공포를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장들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예고편으로 짧은 문장을 하나 소개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가장 정확한 문장으로 바꿔 보세요. 그 과정에서 정확하게 쓴다는 말의 의미를 한 번 더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너의 행동은 자유성이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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